2017년 개봉한 《아이 캔 스피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는 무거운 역사를, 코미디와 드라마의 절묘한 균형으로 풀어낸 작품입니다. 웃음과 감동 속에서 ‘말하는 용기’와 ‘듣는 책임’을 조명한 이 영화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집니다.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 늦게 꺼낸 진심
《아이 캔 스피크》는 단순한 인간 드라마가 아니라, 한 세대가 얼마나 오랫동안 침묵 속에서 버텨왔는지를 조명하는 작품입니다. 나옥분은 수십 년간 자신이 겪은 고통을 가슴속에 묻고 살아왔습니다. 단순히 시대가 말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자신조차 상처를 꺼내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진짜 사연은 영화 중반을 넘어 드러나며 관객에게 묵직한 울림을 남깁니다. 영화가 시작될 때, 그녀는 단지 고집 센 민원인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관객이 그녀를 알아갈수록, 그 민원은 단순한 불만이 아닌 존재의 확인, 그리고 외침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옥분이 영어를 배우고자 한 이유는 단지 언어를 익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고통과 진실을 세계 앞에서 직접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단 하나뿐인 증언을 하기 위해 준비해온 시간들이 그녀의 눈빛과 말투에서 묻어납니다. 특히 국제 청문회에서 "I am here to speak."라고 말하는 장면은, 말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힘든 싸움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순간입니다. 이는 단순한 한 마디가 아니라, 억눌림을 이겨내고 당당히 주체로 선 개인의 선언입니다.
이 영화는 말하지 못했던 이들의 고통을 대변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들이 ‘직접 말할 수 있도록’ 자리와 기회를 만들어 줍니다. 바로 그 점에서 《아이 캔 스피크》는 진정한 의미의 '증언 영화'입니다. 우리가 귀를 기울여야 할 대상은 누군가의 목소리를 흉내 낸 대사가 아니라, 늦게라도 꺼낸 진짜 진심이라는 것을 이 영화는 일깨워 줍니다.
세대의 간극을 넘는 교감과 연대
《아이 캔 스피크》는 단순히 한 위안부 피해자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가 아닙니다. 이 영화가 진정한 감동을 주는 이유는, 과거의 상처와 현재의 삶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중심에는 두 인물이 있습니다. 오랜 세월을 고통 속에서 살아온 나옥분과,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디딘 9급 공무원 박민재. 이 둘은 처음엔 너무나 달랐습니다. 민재는 원칙주의자이자 규정에만 충실한 신입 공무원이고, 옥분은 매일같이 민원을 들고 찾아오는 ‘도깨비 할머니’입니다. 이 간극은 처음에는 마찰로 시작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점차 교감과 연대로 변해갑니다. 민재는 옥분의 진심을 조금씩 알게 되며, 단순히 ‘업무의 대상’으로 그녀를 대하던 태도에서 벗어나, 인간 대 인간으로서 그녀의 삶을 이해하게 됩니다. 영어 수업은 그저 지식 전달의 자리가 아니라, 세대 간 경험과 감정을 공유하는 시간으로 확장됩니다. 옥분은 민재를 통해 다시 사회와 연결되고, 민재는 옥분을 통해 단순한 행정 처리 이상의 ‘공감과 책임’을 배우게 됩니다.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세대를 뛰어넘는 관계 안에서 ‘이해’가 어떻게 피어나고, ‘연대’가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많다고 존경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젊다고 다 무관심한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서로의 삶을 진심으로 듣고자 하는 태도입니다. 《아이 캔 스피크》는 이를 통해 ‘공감’이 단지 감정의 공유를 넘어서 사회적 책임과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기억과 증언, 지금도 유효한 메시지
《아이 캔 스피크》는 단순히 과거의 상처를 드러내는 영화가 아닙니다. 이 작품은 ‘기억’이라는 행위가 왜 중요한지, 그리고 ‘증언’이 왜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어야 하는지를 관객에게 끊임없이 질문합니다. 영화 속 나옥분이 영어를 배워가며 준비하는 국제 청문회는 단순한 개인의 복수나 고발이 아닙니다. 그것은 역사 속에서 침묵당했던 수많은 여성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알리기 위한 자리이며, 우리가 그 이야기를 기억하고 함께 해야 할 ‘지금 이곳’의 의무를 상징합니다.
기억하지 않으면 사라지고, 외면하면 반복됩니다. 영화는 이 단순하지만 절대적인 진리를 따뜻하면서도 강하게 전달합니다. 위안부 문제는 단지 과거의 사건이 아닙니다. 여전히 그 역사를 부정하려는 움직임이 존재하고, 누군가는 여전히 아픔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나옥분의 증언은 단지 ‘말하는 것’이 아니라, 침묵을 깨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회복하는 강력한 행위로 자리 잡습니다. 이 영화의 메시지는 그래서 여전히 유효합니다. 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으면, 고통은 반복되고 존재는 지워집니다. 《아이 캔 스피크》는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동시에, 듣는 이의 책임도 묻습니다. 누군가가 진심으로 자신의 기억을 꺼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행동으로 이어갈 수 있을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듭니다. 바로 그 점에서 이 영화는 지금도 꼭 필요한 작품입니다.
결론 – 우리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말하는 것은 용기입니다. 그리고 들어주는 건 책임입니다. 《아이 캔 스피크》는 이 두 가지가 함께할 때, 비로소 세상이 바뀔 수 있음을 말합니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묻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할 기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그 이야기를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나요?
이 영화는 한 여성의 개인적인 고백을 넘어서, 세대를 잇는 이해와 역사를 품은 이야기로 확장됩니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지금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무엇보다 《아이 캔 스피크》는 우리 일상 속에서도 말하지 못하는 이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줍니다. 피해의 기억은 특정 세대나 과거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차별과 편견 속에 침묵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들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건 완벽한 해결책이 아니라, 진심으로 들어주고 공감하는 사람 한 명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이 될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