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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아이 캔 스피크> – 역사는 기억될 때, 비로소 바뀐다

by skyinhyun 2025. 4. 24.

영화 아이캔스피크 포스터

2017년 개봉한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단순한 드라마가 아닙니다. 코미디의 형식을 빌려 시작하지만, 결국에는 관객의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리는 감동 실화 기반 영화입니다. 영화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이야기를 유쾌하지만 묵직하게 풀어내며, '말하는 것의 용기'와 '듣는 것의 책임'에 대해 진지하게 묻습니다.

민원왕 옥분, 그녀의 진짜 사연

서울 구청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민원을 제기하는 '도깨비 할머니' 나옥분. 직원들은 그녀를 피하고 꺼려하지만, 새로 부임한 9급 공무원 박민재는 달랐습니다. 원칙주의자인 그는 성실히 민원을 처리하고, 어느 순간 옥분은 그에게 영어를 가르쳐 달라고 요청합니다. 황당하게 들리는 이 요청 뒤에는 옥분이 위안부 피해자였으며, 국제사회에 자신의 피해 사실을 영어로 직접 증언하기 위해 준비해온 세월이 있었습니다.

그녀가 영어를 배우고자 한 이유는 단순히 언어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목소리를 자신이 직접 낼 수 있는 용기와 주체성의 표현이었습니다.

웃음 속에 감춰진 아픔, 그리고 용기

영화의 전반부는 코믹합니다. 민재와 옥분의 티격태격 케미, 현실적인 공무원 조직의 분위기, 그리고 옥분의 유쾌한 성격은 관객에게 미소를 안깁니다. 하지만 중반 이후부터 옥분이 겪어온 과거가 서서히 드러나며 분위기는 급변합니다.

영화는 피해자의 이야기를 절대 자극적으로 다루지 않습니다. 대신 조용한 어조로, 그러나 단단하게 그들의 진실을 보여줍니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국제 청문회장에서 옥분이 영어로 증언하는 장면입니다. “I am here to speak.” 이 짧은 문장은 그 어떤 대사보다 무게감이 있습니다. 그 안에는 수십 년간 참아왔던 감정과 상처, 그리고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기 위한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두 사람의 교감, 세대를 잇는 다리

영화는 위안부라는 역사적 비극만을 조명하지 않습니다. 민재와 옥분의 관계를 통해, 과거와 현재, 기성세대와 청년세대 간의 소통과 이해를 함께 다룹니다. 민재는 처음에는 그녀를 귀찮은 민원인으로 대하지만, 점차 그녀의 진심을 이해하게 되면서 성장해 나갑니다. 그는 단순한 공무원을 넘어, 진정한 의미의 ‘시민’으로 거듭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옥분에게 민재는 단지 영어 선생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말할 수 있도록 옆에서 응원해 주는 첫 번째 '청중'이었습니다. 이들의 관계는 단순한 우정이나 정을 넘어서, 아픈 과거를 함께 견디고 이해하는 새로운 연대의 상징이 됩니다.

역사는 기억될 때, 비로소 바뀐다

《아이 캔 스피크》는 관객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과거를 얼마나 진심으로 들어본 적이 있었는가? 누군가 말할 준비를 했을 때, 우리는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었는가?

이 영화는 위안부 피해자라는 역사를 단지 고발하거나 동정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분들이 얼마나 강한 존재였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들은 단지 살아남은 피해자가 아니라, 당당히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말하는 주체'였습니다.

기억하지 않으면 반복되고, 외면하면 사라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말해야 하고, 더 많이 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진짜 변화를 만드는 첫걸음입니다.

결론 – 우리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말하는 것은 용기입니다. 그리고 들어주는 건 책임입니다. 《아이 캔 스피크》는 이 두 가지가 함께할 때, 비로소 세상이 바뀔 수 있음을 말합니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묻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할 기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그 이야기를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나요?

이 영화는 한 여성의 개인적인 고백을 넘어서, 세대를 잇는 이해와 역사를 품은 이야기로 확장됩니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지금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무엇보다 《아이 캔 스피크》는 우리 일상 속에서도 말하지 못하는 이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줍니다. 피해의 기억은 특정 세대나 과거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차별과 편견 속에 침묵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들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건 완벽한 해결책이 아니라, 진심으로 들어주고 공감하는 사람 한 명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이 될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