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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화<박쥐> 다시 보기 (욕망, 종교, 인간)

by 뿅미니 2025.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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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박쥐 포스터 사진

 

2009년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는 단순한 뱀파이어 이야기가 아닙니다. 인간의 본성과 욕망, 그리고 종교라는 무거운 주제를 정교하게 얽어낸 이 작품은, 시간이 흘러 다시 봐도 여전히 강렬한 여운을 남깁니다. 지금 다시 꺼내보는 박쥐, 그 속에 담긴 상징들을 천천히 되짚어보려 합니다.

욕망의 얼굴, 신부의 변신

처음 박쥐를 봤을 때 가장 충격적이었던 부분은, 신부라는 상징적인 인물이 뱀파이어가 된다는 설정이었어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신부는 금욕과 헌신, 믿음을 지키는 존재잖아요. 그런데 영화 속 상현은 실험을 통해 의도치 않게 뱀파이어가 되면서 점점 자신의 신념이 무너지는 과정을 겪게 돼요.
그 변화는 단순히 육체적인 갈증으로 시작되지만, 점점 정신적인 균열로 번져요. 처음엔 피를 마시는 것에 극심한 죄책감을 느끼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점점 그 욕망에 익숙해지고, 결국엔 스스로 그것을 선택하게 되죠. 저는 이 장면들을 보면서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쉽게 본능에 지배될 수 있는지를 새삼 실감했어요.

그리고 이 영화가 흥미로운 점은, 단순한 ‘흡혈’의 욕망이 아니라 ‘사랑’과 ‘성’이라는 감정이 섞이면서 훨씬 더 복잡한 양상을 띤다는 거예요. 상현은 태주를 만나면서 인간으로서 느껴본 적 없는 감정에 휘말리게 돼요. 자신이 그토록 부정하고 억눌러왔던 감정들, 이를테면 사랑하고 싶다는 마음, 누구와 함께 있고 싶다는 욕망, 그리고 육체적인 끌림이 한꺼번에 터져버리는 거죠.
신부라는 사회적 역할은 이런 감정들을 금기로 여겨왔기 때문에, 상현은 더 큰 내적 갈등을 겪어요. 하지만 결국 그는 욕망을 따르고, 그 선택은 여러 가지 파국으로 이어지죠.

이 파트를 보면서 저는 "욕망은 정말 억누른다고 사라지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감추고 있는 욕망이 때로는 더 위험한 형태로 튀어나올 수 있다는 걸, 이 영화는 꽤 섬뜩하게 보여줍니다. 뱀파이어가 된 상현은 단지 초자연적인 존재가 아니라, 억눌려왔던 욕망이 폭발한 인간 그 자체 같았어요.

종교적 상징의 해체

박쥐라는 영화가 주는 가장 큰 충격 중 하나는, 신부가 뱀파이어가 된다는 설정 그 자체예요. 종교적으로 상징되는 ‘신부’는 신의 뜻을 전달하는 자, 죄를 대신 씻어주는 자, 그리고 세속적 욕망과는 가장 먼 존재로 인식되죠. 그런데 이 영화에선 그 전제를 정면으로 깨뜨립니다.
실험 도중 바이러스를 얻고, 피를 마셔야만 살 수 있는 존재가 되어버린 주인공 상현은 자신의 믿음을 지키려고 하지만, 육체적 생존을 위해 점점 신앙의 틀을 하나씩 벗어나게 됩니다. 초반엔 기도하고, 자책하고, 죄의식을 느끼던 그가 어느 순간부터 점점 쾌락에 익숙해지고, 결국엔 도덕적인 기준마저 무너지게 되죠.

특히 눈에 띄는 건 영화 전반에 흐르는 종교적 상징물의 반전된 사용이에요. 예를 들어 성당이라는 공간은 보통 구원의 상징인데, 이 영화에선 갈등과 파괴가 일어나는 장소로 그려져요. 십자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원의 도구가 아니라 죄책감의 상징처럼 사용돼요.
이건 단지 설정이나 장치의 문제가 아니라, 박찬욱 감독이 가진 종교관과 인간관이 반영된 해석 같더라고요. 종교가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가, 혹은 종교가 인간의 본능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거죠. 그리고 영화 속 상현은 그 질문에 대해 너무나 인간적인 방식으로 답합니다. 믿음보다는 욕망을, 구원보다는 본능을 선택하면서요.

저는 이 파트를 보면서, 우리가 도덕이나 신념이라고 믿고 있는 것들이 사실 얼마나 상황에 따라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느꼈어요. 평소에는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행동들도, 극단적인 상황에 놓이면 사람은 본능적으로 반응하게 되잖아요. 이 영화는 그걸 아주 노골적으로 보여주면서도, 비난하지 않아요. 오히려 그 과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어요.
그래서 박쥐는 단순한 뱀파이어 영화가 아니라, 인간과 신념 사이의 복잡한 줄다리기를 다룬 굉장히 깊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박쥐를 보고 나면 오히려 묻게 됩니다. “인간다움이란 무엇일까?” 보통 인간과 괴물을 나누는 경계는 너무 명확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그 선이 점점 모호해져요. 주인공 상현은 뱀파이어가 되면서 더 이상 인간의 조건을 갖추고 있지 않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과정을 통해 더 깊고 복잡한 감정을 겪게 됩니다.
사랑에 빠지고, 죄책감을 느끼고, 죽음 앞에서 망설이는 그의 모습은 단지 괴물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보다 더 인간적인 존재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어요.

특히 태주와의 관계를 통해 드러나는 감정선은 이 영화의 핵심이에요. 둘은 서로에게서 일종의 해방감을 느끼고, 금기를 넘어서며 인간 본성의 바닥을 드러냅니다. 처음엔 태주가 피해자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태주가 욕망과 폭력의 중심으로 자리 잡죠. 이 장면들을 보면서 저는 인간성이라는 것이 선하거나 도덕적인 모습만으로 정의될 수 없다는 걸 느꼈어요. 욕망하고, 흔들리고, 선택을 후회하는 과정 그 자체가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인간다움이라는 주제를 낭만적으로 그리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우리는 흔히 인간적인 면을 따뜻함이나 연민, 이해심 같은 단어로 표현하지만, 박쥐는 그 이면의 불편한 진실을 보여줘요. 상현이 저지르는 폭력, 태주의 잔혹한 본능, 둘 사이의 이기적인 사랑… 그 모든 것이 인간적인 동시에 비인간적으로 느껴지죠.
결국 박쥐는 “우리는 얼마나 인간적인가?”가 아니라 “우리는 인간이라는 이름 아래 어떤 괴물을 품고 사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영화예요. 그 질문은 불편하지만, 마주하지 않을 수 없는 진실이기도 하죠.

영화를 보고 나서 한동안 마음이 무거웠던 이유는, 단지 잔인하거나 충격적이어서가 아니었어요. 그보다는 제 안에도 상현처럼 이중적인 모습이 있다는 걸 인정해야 했기 때문이에요. 겉으론 도덕과 이성으로 살아가지만, 그 안에는 때로 통제되지 않는 감정과 욕망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게 되더라고요.

결론: 다시 봐도 무거운 울림을 주는 영화
박쥐는 처음 봤을 땐 그 파격적인 설정과 강렬한 연출에 압도되었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 다시 보니 오히려 더 섬세하고 인간적인 영화였습니다. 인간 본성의 복잡함과 종교라는 틀 안에서의 갈등을 이렇게 아름답고도 끔찍하게 그려낸 작품은 많지 않아요.
하루쯤은 모든 외부 자극을 끄고, 이 영화를 다시 한번 진지하게 감상해 보시길 추천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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